포토에세이 5

#11 땅에서 10cm 떨어져 살아가는 이상주의자의 변명

2011년 3월 11일. 이 날 나는 동경의 어느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보고 있었다.사진전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기 위해 전시장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다.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 '갑자기 왜 이러지..?' 엘리베이터가 있는 현관으로 나왔더니,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난간을 붙잡고 있거나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지진. 난생 처음 겪어보는 큰 지진이었다. 잠깐 멈추었다 싶더니 다시 높은 강도의 여진이 왔다.그 전시장이 있는 곳은 28층으로, 바깥 전망이 보이는 큰 창이 있었는데 건물 자체가 마치 휘청거리다가 꺾여질 듯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전시장 안에는 벽에 걸려있던 사진 액자가 떨어져 와르르 깨져있고 조금전까지 웃으며 인사를 나눴던 친구가 바닥에 주저..

PHOTO + 2016.07.09

#7 떠날 수 있는 자유, 머물 수 있는 용기

아직 나를 둘러싼 세상이 그렇게 커보이지 않았을 무렵, 젊은 날의 나는 어디든 떠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일상에 묻혀 그런 마음들이 희미해 질때면배낭을 꾸리곤 했다.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해서 여행길에 올랐는데여행의 끝자락에선 일상 속 여행을 새로이 시작하며 머물 수 있는 용기를 얻고 돌아왔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옳았다. 나이가 들고 나보다 세상이 더 커보이기 시작했을 때, 젊은 날의 여행은 잊혀지지않는 짙은 향기처럼 시린 가슴을 스쳐 물들이곤 한다. 그리고 나지막히 속삭인다. 어디든 떠날 수 있다고.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PHOTO + 2016.06.28

#6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마법

카메라 작동법조차 잘 모르던 19살 소녀에게 사진이란 추억을 회상하는 '네모난 종이'였다. 어떤 마음의 뭉클거림이 있어서였을까.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열정으로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사진은 소녀에게 추억, 그 이상의 무엇이 되었다.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경이로움과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떨림, 그리고 어두운 암실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상(象)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소녀는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서른이 가까워질수록스무살 마법을 배우던 때의 두근거림이 미세해져갔지만, 소녀는 이따금 오래된 카메라를 꺼내들고 되뇌인다. 그래도 가장 순수하던 그 때,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마법을 배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PHOTO + 2016.06.27

#5 I must fly, fly, fly

뜨거운 여름이 끝나갈 무렵,여전히 녹음은 짙었고 햇볕은 대지를 달구었다. 어느때보다 가슴 뜨거운 여름이었건만, 스물다섯 젊은 청춘에게 그 인고의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그 곳을 벗어나야만 했다.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혹은 그 길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해도,높이 더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야만 했다. 자유는 바라고만 있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서투른 날개짓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청춘은 날고야 말았다. 자유의 품에 안겨.

PHOTO + 2015.12.17

#1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직 추억을 회상하기보단 추억을 만들어가야하는 나이이지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던 추억의 끝자락을 잡아다시금 며칠전의 일처럼 상상해보는건 사진이 주는 묘한 매력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필름을 현상하고 종이에 인화해 찬찬히 들여다보던 시대에서,사진이 그저 핸드폰이나 컴퓨터 속에서 데이터로 존재하다 사라지기 쉬운 요즘. 다시한번 사진을 꺼내보기로 마음 먹었다.별것아닌 평범한 사진일지라도그 속에 담긴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서,그 때 그 순간 떨리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던나를 찾아서.

PHOTO + 2015.12.1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