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di Rum, Jordan, 2015 ⓒindigo-aram
2011년 3월 11일.
이 날 나는 동경의 어느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보고 있었다.
사진전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기 위해 전시장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
'갑자기 왜 이러지..?'
엘리베이터가 있는 현관으로 나왔더니,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난간을 붙잡고 있거나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지진.
난생 처음 겪어보는 큰 지진이었다.
잠깐 멈추었다 싶더니 다시 높은 강도의 여진이 왔다.
그 전시장이 있는 곳은 28층으로, 바깥 전망이 보이는 큰 창이 있었는데 건물 자체가 마치 휘청거리다가 꺾여질 듯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전시장 안에는 벽에 걸려있던 사진 액자가 떨어져 와르르 깨져있고 조금전까지 웃으며 인사를 나눴던 친구가 바닥에 주저앉아 매우 놀란 얼굴로 울먹거리고 있었다.
또 여진이 일어날 가능성 때문에 엘리베이터 사용은 물론 계단도 통제되고 약 3-4시간을 그 건물에 있게 되었다.
전파가 터지지않아 일본에 있는 지인들에게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지금 이 상황을 전할 수가 없었다.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르고 늘 그 죽음을 준비해야한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을 상황에 처하고 나니
삶에 대한 미련과 함께 사랑하는 이들에게 인사도 못 전하고 떠나는 것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요르단에 있는 와디럼 사막을 여행할 때였다.
가도가도 비슷한 광경이 끝없이 펼쳐진 광야 속에서 우리 인생이 어쩌면 저 광야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끝이 보이지 않고 때론 무미건조한 것만 같아도 광활한 대지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네들의 인생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것이 메마른 땅이든, 푸른 초장이든 말이다.
2011년 이후,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호흡과 걸음이 예전보다 느려졌고, 내일보다 오늘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또 무언가를 이루거나 성취할 때 느끼는 행복보다는 스쳐지나가는 작은 순간과 인연에 감동하며 행복해 할 때가 많아졌다.
성공지향적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겐 노력해도) 가난이 되물림되는 사회에 살고있지만
여전히 이상주의자처럼 오늘을 살아가는건 내게 주어진 인생이 짧다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상주의자를 현실도피자 또는 루저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말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싶다.
땅에서 10cm 떨어져 살아가는 듯한 나에게 인생은 광야와도 같아서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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