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여러분 :) 말레이시아에 살고있는 윈디입니다.
한국을 떠난지는 벌써 5년차에 접어들었는데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찬찬히 뒤를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뒤늦게 인턴 일을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좀 늦은 나이였고, 한국 취업시장에 대해 무관심했던 탓에 공채가 뭔지도 모르고 자격증도 하나도 없었죠.
교육콘텐츠 제작 프로젝트에서 번역을 담당했는데 월급이 100만원이었어요.
처음엔 인턴이고 첫 직장이니 이 일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시작했죠.
그런데 첫 월급날, 세금 빼고 88만원 이라는 숫자가 통장에 찍혔는데 화장실에 앉아 혼자 펑펑 울었어요.
나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10대 때는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3개월 동안의 인턴 기간을 마치고, 계약 연장 제의가 있었지만 첫 회사와는 그렇게 안녕했어요.
다음 직장은 월급 200만원을 주는 중소기업.
정규직이었고 업무도 무난했지만, 문제는 제가 조직생활에 잘 적응을 못했죠.
특히 회사 실적이 안좋을 때는 대표님이 직원들의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셨어요.
한달에 두 번 토요일에 출근해서 나름 회사를 위해 노력을 했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모자랐나봐요.
집이 경기도여서 출퇴근 왕복 3시간이 걸렸는데 몸도 점점 안좋아져 갔어요.
결국 1년을 못 넘기고 퇴사를 하게 됩니다.
다 제가 부족한 탓이겠죠 뭐.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첫째를 낳게 되었고, 잠시 쉬었다가 재취업을 도전했어요.
제대로 된 경력 없이 나이가 들어서인지 대부분 이력서에서 떨어졌고,
면접까지 가더라도 '아이가 있는데 야근을 할 수 있겠냐, 주말에 출근을 할 수 있겠냐' 이런 질문들을 받았죠.
자녀가 있는 30대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취업을 한다는건 정말 쉽지 않다는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훌쩍 여행을 떠나 방랑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먹여 살려야하는 자녀가 있는 부모로서 그러기도 쉽지않았어요.
그래서 2017년 한국을 떠나 해외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MBTI 테스트에서 INFP 는 상상력이 풍부한 몽상가라고 하잖아요.
땅에서 10cm 떠있는 이상주의자, 그러나 좀 게을르고 갑자기 식어버려 마무리는 잘 못하는.
부정하고 싶지만 제가 그랬어요. (INFP 를 욕하는건 아니에용!)
머리속으로 하고싶은건 많은데 막상 추진력이 따라주질 않아 30살이 되도록 이루어놓은게 하나도 없었죠.
당시 '잉여'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꼭 내가 잉여인간이 된 것만 같았어요.
한국에서 인간관계도 쉽지 않았어요.
내가 한 말이 남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혹은 남이 생각없이 한 말도 여러번 곱씹으며 혼자 상처받았죠.
친구들 만나 대화하는걸 좋아하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기에 진득하게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했죠.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벗어나고 싶어 다른 사람 눈치 안 보는 해외생활을 결심한 것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한국사회 부적응자인 저는 유학생활까지 합쳐 11년차 해외에 살고 있어요.
인프피로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사는건 쉽지 않았지만, 어찌저찌 잘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이 채널에서는 지금 저희 가족이 살고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일상 이야기를 다루려고 해요.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화이팅하고 있는 분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그럼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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